방에 읽을 책과 공부 거리와 메모할 신문지 쪼가리들을 이렇게나 많이 늘어놓고 나는 글을 쓴다. ‘언젠가 치워야지, 조만간 치울 거야, 오늘은 꼭’하며 지나온 최근 몇 날들. 정리하고 쓰겠다고 마음먹고 벼른 지 몇 달. 하지만 여태 그래왔듯이 늘어놓은 상태가 나는 “최고 쾌적해”하는 궤변(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을 하나 더 늘어놓으며 또닥거린다.
굳이 치워야 속이 시원하고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MBTI 유형 중 J들은 ‘극혐’이겠지만 ‘극 P’인 내가 내 집에서나 편한 대로 살면 그만이지, 남 눈치 볼 것이 무어란 말인가.
더구나 최근에 나는 올해 6월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공로 연수 중이라 ‘제2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자료’라는 핑계로 온갖 것들 속에 파묻혀 즐겁게 지낸다.
즐거운 일 또 하나, 나는 얼마 전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상을 받았다. 상 이름은 지부에서 열심히 활동했다고 주는 ‘지부 회원상’. 멋진 수상소감으로 이말 저말 생각해 봤지만 다 까먹고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40년 근무한 여성소방공무원입니다.
40년 전에는 법에서 성차별을 했고(민법상 친족의 범위가 부계 8촌 이내, 모계 4촌 이내),
30년 전쯤에는 나 살아생전에 호주제가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변하고 변해서 이제는 그런 일들이 아스라한 옛날 일처럼 느껴집니다.
지금도 바꿔나가야 할 일이 많은데
현재 정부가 복지·인권·노동정책 등에서 후퇴하고 있지만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고 하여
한번 다스려지면 한번 어지러워진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난세가 다음엔 치세로 돌아오겠지요.
우리 희망을 가지고 잘 견뎌냅시다!”
물론 맹자는 사후 이천년이 넘어 수상소감으로 당신의 말을 내가 써먹으라고 이 말을 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고 희망을 주는 말씀을 이 외에도 많이 하셨다. 그런 맹자의 매력에 빠져 일주일에 하루는 도반들과 같이 맹자를 공부하고 있다.
말 나온 김에 나의 요즘 일과는 고전 공부 외에 또 하루는 민중가요 노래패 ‘놀자’에서 노래하고 다른 하루는 성공회대학교 ‘노동 아카데미’ 수업을 듣고 있다. 그 외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필라테스하며 매주 토요일은 서울에서 게슈탈트 상담 공부를 한다. 그리고 주 5일 대부분의 낮에는 상담과 인권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당분간 성소수자부모모임 정기모임을 참석하지 못하는 게 몹시 아쉽지만 퇴직 후에 상담과 코칭으로 사람들을 만날 준비를 위해 참고 있는 중이다.
현직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바쁘지만, 마음은 덜 힘들다. 그동안 고참으로 근무하며 남 눈치 볼일이 없어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은 직장 일에 많이 가 있던 듯하다. 책임감이든 부담이든.
세상의 모든 월급쟁이가 사장이 보기에 ‘월급루팡’같아도 다들 월급만큼 일을 한다는 반증이겠지. 월급은 받는 만큼 일에 공력을 들이고 에너지를 쓰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