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경기에서 눈에 띈 선수들을 서술하자면 잡지「베스트일레븐」처럼 지면을 모두 써도 부족하지만, 오늘 글은 선수 소개가 아니므로 내 마음에 입주한 한 명의 이름만 써본다.
아니, 미친 수비를 보여주고 깔끔한 패스와 슛을 차는 선수 이름이 뭐야?
김혜리? 오케이 접수.
심지어 국가대표와 국내 소속 리그 팀 주장이요?
혜리야, 평생 가자.
그렇게 여축은 나에게 교통사고처럼 왔다.
친구들 따라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진을 500원에 구매하던 ‘초딩’은 성인이 되어, 스스로 돈 벌어먹고 사는 경제력과 자차의 힘에 기댄 기동력과 개인사업자만 누릴 수 있는 시간으로 ‘덕질’을 한다.
‘입덕’ 한 이후 가장 빠르게 국가대표 경기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티켓을 구매하고, 일주일에 군산에서 화천과 경주를 오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과거 시험공부하듯 외웠던 정보들이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외워진다는 것도 배웠다. 당연하지. 같은 경기를 몇 번이나 보니까. 이해하지 못하던, ‘덕질’에 모성애가 씌워지는 행위의 부정적인 영향을 토로하며 달갑지 않게 보던 덕후들의 “내가 낳을걸”이라는 주접도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 토요일, 응원하는 신인 선수가 리그 개막 경기에 주전 선발되어 풀 경기를 뛰고, 심지어 스스로 만들어낸 PK 기회에서 데뷔 골을 넣는 걸 보며 “아, 이은영!! 내가 낳을걸!!!”이라며 마음 깊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여축 ‘덕질’은 스스로 단언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부정하며 모든 덕후를 이해하게 했다.
기본적으로 여축은 스포츠로, 도파민 중독자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고생은 선수들이 하지만, 성취감은 나에게도 쉽게 전이된다. 90분 내리 고생하고, 그 경기를 위해 매일 같이 체력 훈련하고 몸을 만드는 건 선수들이지만 벅찬 마음과 쾌감은 팬에게도 온다.
하지만, 선수들이 흘리는 피·땀·눈물만큼 사실 덕후들도 피(자본주의에서 돈은 피요), 땀(경기를 보러 가는 노력은 땀이요), 눈물(선수가 울면 팬도 울고, 그를 울린 근원에 분노한다)을 흘린다는 것은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재미로만 이야기했지만, 여축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건 나에게 불가항력의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구조는 내가 계속해 바꾸고자 하는 사회 속 여성 문제와 닮았기 때문이다.
여성 스포츠가 가지는 고질적인 낮은 임금과 열악하고 불공정한 대우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여축이 가지는 특이한 부분은 WK리그 출신의 여성 감독이 과반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8개 구단 중 5개 구단) 처음엔 그것이 좋았으나 점점 현실이 보였다.
‘아, 돈이 안 되니까 남자 감독이 많지 않겠구나.’
‘돈이 되는’ 리그인 배구와 핸드볼을 보면 숫자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기 더 쉽다. 남자팀과 비교해서 여자팀이 국제 대회 성적도 좋고 국내 리그 경기 티켓 판매 실적도 더 좋은 배구와 핸드볼을 보면, 현재 여자배구 국내 리그에서 여성 감독은 없고 여자핸드볼에서는 8개 구단 중 1개 구단(인천광역시청의 문필희 감독) 뿐이다.
그 많던 메달리스트 여성 선수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생각하면 속이 뒤틀리고 외로워진다.
얽히고설켜 농도 짙은 사랑의 근본은 상대의 매력과 함께 어딘가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지는 애잔함도 있어야 하리라. 여축은 스포츠가 가지는 매력과 동시에 그들의 성장과 확장을 마치 내 일처럼 바랄 수밖에 없는 간절함이 있다.
소다공장이 발행되는 수요일의 다음 날인 21일 목요일엔 WK 2라운드가 있다.
4개의 구단의 연고지에서 경기가 펼쳐질 예정이고, 나는 경남 창녕에서 경기하는 인천현대제철(김캡틴 멋져)과 창녕WFC(은영이 기특해) 모두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차 있는 곳에서 선수들이 정당한 대우와 임금을 받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뛰는 걸 상상하며 말이다.
소다공장의 독자들은 ‘덕질’의 대상이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