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가면 그곳만의 특유한 냄새가 있었다. 여기저기 오래된 얼룩 그리고 생각지 못하게 밟게 되는 끈적임의 공격으로 자연스레 양말을 벗고 손이 닿는 대로 닦았으며 어떤 날은 빨리 집에 오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접해본 시골집 또는 노인들이 사는 곳은 내 할머니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 시절엔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이제 오십을 갓 넘긴 오십 하나의 속도로 인생에 적응하고 있다.
작년 어느 날 휴대폰을 보다가 한 번도 겪지 못한, 글씨가 흐릿한 경험을 했다. 시야가 너무 가까우면 겹쳐 보이면서 살짝 어지러운 증상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자연스레 휴대폰 잡은 내 손을 눈에서 거리를 두니 초점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3초 정도 남짓한 그 짧은 시간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의 도가니였다.
“나도 늙는구나...”
한두 개 보이던 하얀색 머리칼도 부쩍 늘었고 머리를 쓸어 넘길 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하얘서 마음이 쿵! 하기도 한다.
시력은 너무 빠른 속도로 떨어져 조금만 어두워져도 책 보기가 힘들다. 자연스럽게 눈을 조그맣게 만들어 실눈을 뜨면서 읽게 되는데 또 그 때문에 이마엔 인상 주름이 나있다.
그래서 불을 밝힌다.
그때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전기세가 아까워 전기를 잘 켜지 못했다. 해가 밝으면 일을 하시고 해가 지면 잠에 드는 말 그대로 자연에 맞춰 사는 분이셨다. 나와 같이 할머니도 어느 날부터 시력이 떨어졌을 테고, 점점 주위의 작은 먼지나 얼룩은 희미해졌을 것이다. 바닥의 오염은 발바닥이 감지해야 아셨을 텐데 그 감각마저도 세월이 깊어지며 둔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시골의 풍경은 많이 닮아들 있나 보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뾰족하고 거칠어서 타인뿐 아니라 나까지도 아프게 했던 순간들이 있다. 젊음이 영원할 것 같았고.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밤잠을 못 자고. 마음에 꽂아 둔 날카로움을 꺼내 재정비하고. 미운 마음을 곱씹곤 했던 내 젊었던 세포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결국 인간은 흐려지고 무뎌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불편함보다는 포용이 내재되어 있길 바란다.
‘젊은 시절에는 네 마음대로 좁게 살았어도 이젠 작은 것에 눈 감고, 크지 않은 충격에는 미동도 하지 마라’는 순리가 얼마나 놀라운가.
곧, 돋보기 사러 함께 가기로 한 친구에게 연락해야지!
우아한 안경테로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