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듬어진 문장은 그 자체로 막강한 힘을 가지지만, 때로 비문이 군데군데 섞인 날 것의 문장은 거칠어도 생동감을 준다. 현재의 마음 상태를 남기는 기록이자 얼마 남지 않은 결과물에 대한 의미를 다지고자 하는 다짐서이기도 한 오늘의 글은 후자의 어설픔이 어울린다. 우만이 사랑하는 교정자의 책 제작 후기에 쓴 글을 인용하며 수정 없이 한 번에 써 내려간 글을 공유한다.
“내가 덧대거나 삭제한 토씨들이 책의 맛을 돋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지만,
오탈자와 비문처럼 오류 있는 문장이 성취할 수 있었을 것들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최예빈
2023년 8월 22일 처음으로 여자축구 직관을 다녀온 후부터 여자축구를 절절 읊고 다닌 지 1년 차가 되어가는 시점. ‘여자축구 문화 전문 잡지’를 내기로 결심을 했다. 놀라울 따름이다. 책이라는 것이 결심을 했다고 나올 수 있다니. 나무에 미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볼 요량이지만, 그 결과물이 어떻게 평가될지 알 수 없어 두려운 마음도 크다. 하지만 내 마음이 무엇이 되었든 8월 31일에 시작하여 양일간 진행하는 군산북페어 2024에 우만컴퍼니의 새로운 책이, 여자축구에 대한 책이 나온다.
콘텐츠 제작부터 인쇄 비용까지 지원 사업이나 후원 없이 본인이 부담하는 프로젝트로, 약 천 만 원의 돈이 드는 나에게도 굉장히 큰 결심인데. 인쇄 한 책을 다 팔아도 적자인 이 프로젝트를 그럼에도 왜 하냐고 하면, 뭐라 할 말이 없다.
“글쎄요, 그만큼 여자축구를 좋아하나 봐요.”라고 허허실실 웃고 말지만 이 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목적지가 있다면
그곳은 다만,
사람들이 여자축구를 보러 왔으면 좋겠고,
그리하여 선수들이 더 많은 관중과 호흡하고
협회와 연맹의 지원 속에서 더 나은 환경에서 경기를 치르면 좋겠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여자축구가 더 풍부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실버타운 가서도 여자축구를 계속 볼 수 있도록...
이 모든 마음의 근원은 여자축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 100여 년 된 적산가옥으로 유명한 한 작가의 집을 촬영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주인이 겨우 3명밖에 바뀌지 않았다는 역사 깊은 마루를 밟으며, 커피를 마시고 컨트리 음악을 듣는 순간에
'삶을 음악과 술 그리고 내 취향이 담긴 작업으로만,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으로만 채울 수 있다면.'
라는 메모를 폰에 남겼다.
그 순간 내가 가장 고달팠던 아름다움은 그날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제23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2024) 일반부 준결승전이었다.
촬영을 마친 후 여러 일을 마무리한 후 집으로 돌아가 잠시 쉬는 시간 동안 축구 경기를 봤다. "마지막 슈팅은 패스"라는 역설이 절실히 드러나던 승리 골(인천현대제철, 서지연 선수)을 바라보며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금 느꼈다.
한 골 한 골을 위해 키퍼에서부터 빌드 업을 다지며 필드를 달리는 승부욕, 라인이 무너질만큼 체력적으로 힘들더라도 이기겠다는 의지 하나로 어떻게든 경기를 이끌어나가는 투지, 여름 햇볕과 유니폼을 흠뻑 적시는 땀에도 굴하지 않고 치달리고 경쟁하고 승부를 가르는 모습.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린 후 경기장에 누워버리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인생이란 게 그곳에 있다고 느낀다.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상위권 팀을 상대로 5골을 넣기도 해버리는 하위권 팀. 마지막까지 공을 쫓아가서 키퍼도 상대측 수비수도 놓친 공을 득점으로 연결해버리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런 반전과 노력과 투지들 속에서 기쁨과 환호와 아쉬움과 한탄이 섞인다.
잔디의 풀 내음과 흙 냄새 그리고 비릿한 땀 냄새가 함께 풍기는 구장 안에 함께 있으면 선수들은 그저 달리는 것이지만,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의 행위를 해석하는 관찰자인 나는 감동을 받는다.
파리 올림픽으로 승전보가 계속해서 울리는 와중에, 여자 스포츠인들은 계속해서 투사로 변한다. 기사에서 삭제되는 여성 메달리스트의 이름, 협회의 차별 대우에 메달로 그 발언권을 획득하며 맞서는 선수. 경기만 할 순 없는 걸까. 여자축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만 신경 써도 힘든 선수들이 경기 외의 상황에 정신적 체력을 낭비하지 않길 바랄 뿐인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이 여자를 좀 더 사랑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그게 안 된다면 나라도 좀 더 사랑하고 떠들고 싶어진다.
그 결정이 지금 나오는 책일 것이다. 이 행동의 결과가 어떤 걸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용기, 즉 '무식이 용감인 상태'에 나오는 책. 내부인도 완전한 외부인도 아닌 상태에 나오는 책. 그렇기에 지금 내는 이 책과 글들은 가장 순수한 결정(結晶)일 것이다.
우만컴퍼니를 운영한지 어느새 4년 차, 몇 년의 시간 동안 어리둥절하게 요청 들어온 인터뷰 몇 개를 했고 그때마다의 단골 질문은 ‘우만컴퍼니의 원동력’이었다. 혼자 우만컴퍼니를 운영해나가는 나를 감탄하는 말이기도 한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아직도 궁금한 게 많아서요.”
정말 순수한 열정이 모두 소진할 때까지 전력을 다해보는 지금 다시 대답을 한다면,
“뭔가를 사랑할 열정이 있어서”라고 답할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열정이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것이 있다면 우만컴퍼니는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