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을 최근에서야 완독했습니다. 고속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그날따라 버스에는 (군부대로 복귀하는 듯한) 외국인으로 붐볐어요. 그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며, <희랍어 시간>을 읽어서인지 문득문득 외국어를 배울 때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의 시간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희랍어 시간>의 화자는 말을 잃어가는 여성입니다. 그녀에게 낯선 희랍어는 침묵을 깨뜨리는 계기이지요. 독특한 이유로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희랍어의 문법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희랍어에는 중간태(수동태와 능동태 말고 제3의 태)가 있다고 해요. 모국어에 없는 문법을 이해하려면 때로 생각의 방법(혹은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영어의 재귀대명사, 스페인어의 재귀동사, 한국어의 존대어 등 색다른 문법은 색다른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희랍어 시간>의 여성 화자가 말을 잃기 전에는 아주 영민했다고 해요. 그녀가 한글을 깨우치는 과정은 아래와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오빠가 그녀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한글의 구조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나’를 발음할 때의 ㄴ과 ‘니’를 발음할 때의 ㄴ이 미묘하게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을 발견했고 뒤이어 ‘사’와 ‘시’의 ㅅ 역시 서로 다른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합할 수 있는 모든 이중모음을 머릿속에 만들어보다가 ‘ㅣ’와 ‘ㅡ’의 순으로 결합된 이중모음만은 모국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적을 방법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어가 모어인 이들에게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것은 ‘은, 는, 이, 가’의 조사를 이해시키는 것만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격증을 갖게 된 것은 2010년도입니다. 그 무렵은 종이 잡지가 점점 줄어드는 시기였어요. 친구가 일하는 월간 잡지사도 문을 닫으며, 인상 깊은 사진을 남겼어요.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마지막 호 잡지를 반으로 접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우리 잡지 접어요.”라는 손 글씨가 보이는 사진입니다. 사진 기자였던 친구는 이참에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겠다고 선언했어요. 그 친구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우리들은 더 늦기 전에 자격증을 하나씩 “따두자!”고 결의했던 거 같아요. 농담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실행이 되었는지 자세히 기억 나진 않아요. 다만 얼마 후 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립대학교 한국어 강사 양성 과정에 등록하여 120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했습니다. 그 자격증 덕분에 멕시코 과달라하라 ‘la casa del 한글’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들은 한국 예능(특히 ‘아는 형님’), 한국 아이돌, 한국의 메이크업 유튜버, 한국 드라마(특히 ‘꽃보다 남자’)를 사랑하는 이들, 한국의 대학교에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이들, 한국의 기업에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 등 다양했어요. 그중에는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크리스티앙만큼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을 할 수 있었어요.
짧은 경험이지만 멕시코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저에게 노동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다시 또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학생들과 <희랍어 시간>을 꼭 같이 읽고 싶습니다.
p. 174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희랍어 시간>에는 아름다운 문장과 묘사가 넘쳐 흐릅니다. 이 책을 외국인과 함께 읽는다면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넘어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아름다움이 외국어의 경계를 허물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