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콩나물을 씻은 적이 없는데 개수대 음식물 거름망에 콩나물 한 가닥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도 땅에 심어 놓은 나무마냥 튼튼하고 싱싱한 모습으로.
대체 이 생명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날은 종일 콩나물 생각으로 답을 얻지 못한 채 답답했는데 문득,
‘에이 설마... 밥을 하며 넣었던 작은 검정콩?’
맞았다.
쌀과 함께 씻었던 콩. 쌀 씻은 물을 버리며 손에서 떠나가 버린 콩이었다.
거름망의 습하고 어두운 조건이 딱 들어맞아 누군가 가꾸지 않아도 생명을 틔워버린 것이다.
씨앗을 뿌린 후 흙을 뚫고 나온 새싹들을 다시 거리를 두고 옮겨 심어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마음이 가는데, 나도 모르게 버려진 검정콩 하나가 이렇게도 당당하고 멋지게 자랄 수 있다니.
뭐가 이렇게도 쉽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손이 가고 마음이 가면서도 틀어질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부대끼며 살아간다. 또 확실하지 않은 그 연결 때문에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하는데, 반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무도 당연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겐 마음 귀퉁이 한편 내어주기가 그렇게도 힘이 든다.
내가 먼저 마음을 내어주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과일을 깨끗이 씻어 담아 두셨다며 오매불망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엄마.
김치를 담갔다며 항상 김칫 국물이 넘치게 담는 엄마.
짜증 섞인 말을 퍼붓고 금세 미안하다고 말하면 딸하고 엄마 사이는 그래도 된다며 다 받는 엄마.
그냥 딸이 아니고 ‘우리 이뿐 둘째 딸’이 하나의 단어가 된 엄마.
쉽게 자리한 게 아니었을 버려진 검정콩 같은 내 사람들에게 마음의 무게 중심을 틀어봐야 하지 않을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밤새 뜬금없는 계엄령 선포로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문득 든 생각이 그들에게도 분명 버려진 검정콩 같은 존재가 있을 텐데 혹시 그게 국민이길 바랐던 걸까?
욕심이 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