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조급해지면 종종걸음을 하게 된다. 정말 발을 동동거리는 건 아니고, 종종대는 마음의 비유다. 종종걸음은 발의 속도보다 마음의 속도가 앞서 있다는 표시다. 길을 걷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홀로 뛰고, 몸은 그 뒤를 허둥지둥 쫓아간다. 누군가는 종종댈 때 허둥지둥대며 일을 더 갈무리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허공을 두리번거리고, 누군가는 전화기를 붙들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는 대체로 말이 많아지고, 그것에 대한 정보나 자료를 조사한다. 불안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보를 많이 알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딱 그 모양새이다.
최근 큰 규모의 행사를 치르면서 종종걸음을 할 일이 많았고, 나는 종종걸음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 생각하게 되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수십 개의 절차와 관계가 얽히는 자리에서 마음만 앞서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았다. 세상 이치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었고, 내 호의가 반드시 호의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호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차의 준수였다.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고자 한 일도 절차가 수행되지 않으면, 여름날에 건네는 핫팩과 같았다. 무용하단 의미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종종걸음은 단순히 나의 성격이나 습관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한 발걸음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과 맺는 방식의 반영이었다. 내가 바라는 속도, 내가 원하는 온도만을 고집할 때, 다른 이들의 호흡은 금세 흐트러지고 만다. 행사장에서 부딪힌 작은 마찰들은 나에게 그 사실을 또렷하게 새겨주었다.
그래서 요즘은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춘다. 누군가가 견디기 힘들어질 때, 그 사람이 악의가 없다면 다른 누군가도 나를 견디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 누군가에게 호의를 건네야할 때, 나에게 건네졌던 친절을 기억하는 것.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손을 벗어난 결정에 대해서 인정하고 침묵속에서 기다리는 것. 절차라는 단어는 차갑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차례를 기다리고, 질서를 지키며, 내 호의가 오롯이 호의로 전달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음이 앞서 달릴 때 놓치기 쉬운 배려였다.
종종걸음을 멈추고 나니 길 위의 풍경이 달라 보였다. 바람의 방향, 햇빛의 결, 건너편 사람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발의 속도가 아니라, 내가 서있는 곳을 인지하고 풍경을 살펴보는 여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