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S와 I가 군산에 왔습니다. 군산에 사는 저와 군산에 자주 방문하는 J는 두 번째로 군산을 찾은 S, I와 함께 여행자의 마음으로 군산을 돌아다녔어요. 경암동 철길마을에서 I와 J는 교복을 빌려 입었고 저와 S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즐겁게 웃고, 목적 없이 걸었습니다. 밤에는 패트론(parton) 테킬라를 마시며 넷이 함께한 멕시코 여행, S와 I의 요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I와 S는 디지털 노매드 비자를 받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워케이션(workation) 비자로도 불리는 이 비자는 ‘해외 기업에 소속되어 원격근무를 하는 외국인과 가족’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도입되었고,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전 세계 50여 개 나라에서 디지털 노매드들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으로 비자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며 일하는 저에게 디지털 노매드 비자는 ‘천상계’의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집에서 일하고(재택근무), 섬에서 일하고(선택근무), 노매드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궁금합니다. 와이파이와 컴퓨터가 기반인 디지털 노매드 비자는 우리들의 여행과 삶을 어디로 데려다 놓을까요?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1989년에야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50세 이상에 한하여 얼마의 돈을 예치하는 조건으로 관광 여권을 발급했어요! 해외여행 제한이 풀리면서 배낭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방학이 있는 대학생들이 배낭여행을 주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고, 전셋집을 빼서 가족이 세계여행을 하는 소식들이 전해졌습니다. 여행이 없던 시기에는 여행 기록도 없었어요. 여행이 시작되자 출판사에서 여행안내서와 여행기를 출간하였습니다.
저도 그 무렵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배낭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배낭여행자들의 꿈은 ‘론니 플래닛(Lonely Planet Publication에서 제작하는 여행 가이드북)’ 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일하면서 여행하는 삶, 아침에 일어나 지도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짐을 싸서 떠나는 노매드의 삶을 상상하며 배낭을 메고 모국어로 꿈을 꾸며, 경제활동이 없고, 경쟁이 없는 여행을 즐겼습니다. 여행은 마치 지상의 법칙에 순응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사람들의 임시 공동체 같았습니다.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한 배틀은 상상을 초월했고, 여행지에서의 상상은 광활하고 원대했습니다.
국제전화나 이메일은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행 친구가 되면 서로의 여행 루트를 공유하며 “0월 0일경 도착하면 00식당 안내판에 내가 묵고 있는 숙소를 적어놓을게.”, “0월 0일 저녁 7시 00 기차역 시계탑 앞에서 만나.” 이것이 약속의 전부였습니다.
약속이 어긋나 연락할 길이 없어지면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게 소식을 전해 극적으로 만나는 기대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의 낮과 밤을 떠올리면 오래된 소설을 읽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때에는 세계가 넓고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디지털 노매드 비자 이야기를 듣고 나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민음사)를 다시 펼쳐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