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일정한 생활 습관에 안정을 느끼는 루틴 동물이다.
생활 루틴이 전무한 무(無)루틴 인간에게도 루틴을 선물해 주었다.
✔️간식-물-밥-화장실
출근 전, 출근 후, 퇴근 후 그리고 휴무일의 루틴이다.
그리고 매일 밤 집 앞에 나가 고양이들을 만난다.
시간을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들도 나를 만나러 시간 맞춰 나온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독감이 와도
우리는 만난다.
종일 나를 기다리다.
찰나에 엇갈려도
다음날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오해하지 않고 나를 만나러 온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 물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어때?”
나는 답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훨씬 쉬워요-”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이 쉬웠다.
마음을 보여주고 좋아한다고도 서운하다고도 온전히 전할 수 있어서 온전히 행복했다.
’종.특‘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솔직해도 괜찮았다.
사람에게는 주저하던 표현인데,
고양이에게는 밀려드는 감정이 괴로움이나 후회가 아니었다.
이게 뭐지... 이래도 되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너무 어려운데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너무너무 쉬웠다.
원 없이 마음껏 내 식의 감정을 보일 수 있고,
마음을 받은 고양이가 별 반응이 없어서 너무너무 좋았다.
누구나 어릴 때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감정을 더하거나 나누는 것에는 서툴고
일러주지 않으면 저편의 마음을 참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되는 진실은 늘 괴롭고, 늘 미안했다.
유난히 감정을 아끼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하던 아이는
이제 적당함이라는 방어기제 포장지를 겹겹이 두른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이들과의 관계에 유격이 생길 때마다
곱씹으며 더 안쪽으로, 안쪽으로 넣어두었다.
고양이와 나 사이에는
대단한 믿음도 오해도 없다
보이는 그대로 서로에게 이종인 동물과 소통한다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 어려웠다면서
고양이마다 성격이 다른 건 왜 수집하고 구가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살아오며 풀어내고 싶었던 감정을 해소하는 존재가 고양이라니...!?
그들은 한 사람의 인생에 해방감을 준 대가로
밥과 간식, 드러누워 쉴 곳이 있는 편한 묘생을 등가 교환했다.
나는 기꺼이 그들의 묘생을 보전하고 자주적으로 그들과 함께 사는 삶을 받아들인다.
오늘도 내 마음 길을 도닥여주는 둥그런 고양이들에게 감사하며 집사 루틴을 이어간다.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의 교감이 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궁금증이 생겼다면- 한번 해보시길 권할게요.
구구절절 ’냥비어천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여러 주인에게 모든 감상을 떠넘기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