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씨 | 정은 님의 글을 읽으니까, 마리서사와 자주적 관람 사이에 있는 골목을 어슬렁거리던 월명동 길냥이들의 풍경이 떠올랐어요. 내가 마주친 고양이들이 정은 님의 돌봄을 받은 아이들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뭔가 신기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 집 앞에 상주하던 어떤 고양이를 떠올렸어요. 중성화된 암컷 고양이로 덩치도 얼굴도 커서 저는 '왕대가리'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우리 동네 초등학생들은 '쿠키'라고 부르기도, 그보다 어린아이들은 '야옹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햇살 좋고 바람 산들 한 요즘 같은 계절에 사람도 차도 많이 다니는 벤치에 자리 잡고 꾸벅 조는 게 일상이던 녀석이었지요. 사람을 좋아해서 다가가 쓰다듬으면 골골하며 기대왔고, 추운 날엔 품을 파고들어 마음 아프게 했어요.
그렇지만 다른 고양이들에겐 가차 없었어요.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고양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쫓아내고 말았거든요. 그러다 올해 3월쯤부터 그 고양이가 안 보였어요. 날이 아직 추워서 지하 주차장에 숨어 있나 보다, 짐작하기를 열흘 정도 지난 무렵 이따금 업무 중에 그 고양이를 쓰다듬곤 하던 경비원님께 왕대가리의 행방을 여쭈었습니다. 이내 쓸쓸한 말투로 옆 동 주민분이 집에서 키우겠다고 데려가셨다고 하셨어요. 어디 가서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 안심이었지만 그 집에서 잘 지내고 있긴 한 것인지 주제넘게 걱정되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정은 님이 돌본(돌보는) 많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들에게 들인 마음을 읽고 나니 저도 문득 왕대가리가 많이 보고 싶더라고요. 엄청 귀여우니까 다들 사진 구경하시고, 건강히 잘 살고 있길 기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월엔 전국적으로 벚꽃이 만개했다. 곳곳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혹은 ‘벚꽃 연금(!)’이 휘날리는 때이다. 올해 4월은 벚꽃과 함께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거리에 현수막도 휘날렸다. 국민의 한 표, 값으로 매기면 얼마일까?
누군가는 말하기를 임기 4년 동안 국회가 처리하는 예산 합계가 2,554조 원. 이것을 유권자 4,428만 명으로 나누면 투표용지 한 장의 ‘정치적 값어치’가 5,768만 원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행사하는 한 표의 값이 그렇다는데 생각보다 크다. 웬만한 급여생활자의 1년 연봉보다 많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투표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 또한 사전투표를 마치고 투표 당일에는 여행을 다녀왔다. 30년 전 투표 당일 급한 일로 먼 길을 다녀오느라 투표소를 6시 5분에 도착하여 느낀 낭패감은 이제 옛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권도 권리라고 하기도 한다.
인정!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2016)는 ‘기권’할 그 권리를 갖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그렸다.
20세기 초반 영국은 여성들의 참정권이 없었다. 세탁 노동자인 모드 와츠(Maud Watts)는 한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간다. 여성 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 무리를 보고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드 와츠.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동료와 함께 의회에 가서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여성참정권 운동에 눈을 뜨게 되고 이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사진 :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가장 나쁜 사람이 성폭행을 일삼는 세탁소 사장이 아니라 정작 자기편이라고 믿었던 모드 와츠의 남편이라는 점이다.
아내와 같은 세탁공장 노동자인 그는 아내의 여성참정권 활동에 대해 자기를 수치스럽게 하지 말라며 “당신이 투표권을 가져서 뭘 하려고?”라고 묻는다.
모드 와츠가 “뭘 하긴, 투표를 하지, 당신처럼.”이라는 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지금 이 시대도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친구, 배우자, 연인, 가족들이 생각한답시고 던지는 차별의 말들이 더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이런 말들을 보라.
*사진 : 한국일보
"우리는 창문을 깨고 불을 지른다.
폭력만이 남자들이 알아듣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扮)
"집마다 여자가 있다, 인류의 반은 여자다.
우리 모두를 막을 순 없다. 우린 이길 거다."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扮)
"우린 범법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입법자가 되고 싶은 거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메릴 스트립 扮)
"그들은 우릴 경멸하고 조롱하기만 할 뿐이다."
"우리 협박이 먹히고 있으니까 경멸하고 조롱하는 거다."
-이디스 엘린(헬레나 본햄 카터 扮)
이 얼마나 기세 당당하고 멋진가!
여자들이 유리창 깨고 우체통에 불 지르고 의회에 뛰어드는 영화 속 장면들이 통쾌하다.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모든 폭력은 사물에만, 사람은 다치지 않도록 애썼다고 한다. 실제로는 비행기구를 타고 전단을 뿌리거나 정치집회가 있는 회의장 천장 채광창에서 밧줄을 타고 영화 <미션임파서블>처럼 내려오기도 했다는 이 매력 만점 언니들의 이야기는 도서 「서프러제트」(대교북스)에 나온다.
영화 말미에 왕의 말이 경마 경주하는데 뛰어들어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는 구호가 적힌 스카프를 흔들다가 말에게 깔려 죽고 마는 장면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의 실화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여성이 단두대에 설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여성과 여성의 권리선언을 쓴 죄로 (감히 여성이 정치를 논했다는 이유로)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올랭프 드 구주도 꼭 기억해야 할 실존 인물이다.
사족으로 서프러제트(Suffragette)란 단어는 ‘참정권’을 뜻하는 영어 ‘서프러지(Suffrage)’에 모자라고 여성스러움을 나타내는 어미 ‘-ette’를 붙여 만든 것이다.
본래 영국 기자들이 조롱의 의미로 사용했으나, 참정권 운동가들이 이 단어를 오히려 받아들이면서 20세기 초 활동한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사람들이 조롱 삼아 만든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은 서프러제트 언니들의 멋짐 폭발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