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과를 잘하면서(나의 실수나 잘못을 빨리 인지하고 정성 들여 사과를 하는 사람이라면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일 테고) 또는 받으면서(상대방에게 사과할 기회를 너그러이 주는 사람일 테다) 살고 있습니까?
아이들이 말을 트기 시작하면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사과하는 법이다.
나도 조카들이 아가 시절에 실수하거나 잘못된 고집을 피우면 사과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제법 읊조리곤 했었다.
최근, 상대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마음 다칠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을 응원했던 마음. 옹호했던 마음 등 여러 마음 갈래에 문이 있다면 하나씩 닫히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먼저 내색하지 않으면 상대는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용기 내 말하지 않는 한 자연스레 그 사람과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보통 이런 부대낌의 반복 안에 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고 그 사람에게 사과를 받았다.
기분이 묘하다. 며칠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작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면서 살고 있는가?’ 또는 ‘상대로부터 마음이 열리는 사과를 받았었나?’라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근래에 사과한 적이 없었고 멀리 내다봐도 딱히 사과할 일 없이 살아왔다.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실수나 잘못을 안 해서일까?
아닐 것이다. 내가 속으로 마음 상해 한 것처럼 그 누구도 나의 작은 실수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냥 못 본 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상처가 희미해질 때까지.
사과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하지만, 현상으로 이루어지고 나니 생경했다. 정작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이 사과하는 행동이지 않을까.
나도 당신도 마음의 생채기를 내지 않기 위해 너무 조심스레 살아가는 건 아닌지.
혹여 누군가 내게 생채기를 냈을 때 사과할 수 있는 기회는 주면서 살고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담아두기보다는 나의 상처도 그대로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용기 있는 사과에 너그러이 받아내는 마음의 그릇, 그리고 반복되는 실수가 줄어든다면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사람. 관계.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마음 가득 담아 수줍게 내민 손을 잡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지금 당장 누구에게 어떠한 용기를 내어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