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극장 안 150석 정도 되려나 싶은 규모의 좌석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남녀노소가 다 있어 특별히 선호하는 연령층을 구분할 수 없는 관객들 모습이다. 여성 국극이니 ‘여성들이 대부분이겠지’ 정도가 여성 국극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들어서도 좀 실험적인 연극을 보다 보면 이해가 안 되어 까무룩 졸다가 같이 간 친구에게 눈치를 먹곤 하는 처지이다. 여성들만으로 소리와 춤과 연극을 할 테니 남성들의 각 잡힌(!) 모습은 어떻게 연출될까 하는 호기심과 우려도 있었다.
예전에 가끔 굿 구경을 하며 무당들이 여러 벌의 옷과 장신구를 번갈아 착용하며 때로는 장군, 아기, 어떨 때는 공주로 빙의하여 자태와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처럼 의상과 장식으로 여러 사람을 연기하는 걸까?
그러나 웬걸 시작부터 빈약한 상상은 깨지고 심플하게 매료되었다.
여성 국극 「삼질이의 히어로」 공연에서는 두 사람의 여성이 나와 수십 명의 모습을 연기하는데 특별히 옷을 갈아입는 것도 아니고 장신구가 추가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고 한 사람의 모습도 겹치지 않았다. 그저 공연 내내 두 배우가 목소리와 자태, 무대에서 몇 걸음 이동만으로 수십 명의 캐릭터를 연기해 내고 있었다.
남성, 여성뿐 아니라 아동과 성인까지 젠더와 세대를 프리하게 넘나들었다.
이럴 수가!!
배우뿐 아니라 관객들도 변신하는 캐릭터에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소리와 몸짓, 노래, 춤과 처음 보는 발탈(발에 탈을 씌워 발로 연기) 공연에 흠뻑 빠져 두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공연의 감동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점은 관람자들은 다 느끼는 아쉬움이라 두말할 필요 없을 테고. 놀라웠던 것은 공연에 필요한 악기도 10여 종이 되었는데 또 다른 연주자 두 사람이 그 악기들을 모두 다루었던 점이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히어로이자 우리 각자의 서사가 한 꼭지씩은 담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여성 국극 자체가 1950년대 해방과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또한 이 어려운 시대, 위로가 필요한 지금의 우리와 교차하는 지점 아닌가.
*사진 : 여성 국극 <삼질이의 히어로> 포스
어렸을 때 판소리를 TV에서 보며 지루해 하다가 커서 직접 듣고 난 후 판소리의 울림과 한을 느끼며 이 좋은걸, 설명할 수 없는 이 감동을 뒤늦게 알게 되었음에 후회한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 서양음악만 배우고 국악기나 우리 소리에 대해 배우지 않았어도 그게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 뒤늦게 판소리를 직접 듣고 나니 이후에 음반으로 들어도 그 감정이 굽이굽이 내 몸과 목을 감고 휘돌아 흥이 절로 나고 애간장이 녹아들었다.(물론 속으로) 그때처럼 국악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국극을 보며 인생의 또 다른 장르 하나를 발견한 기쁨을 느낀다.
여성 국극은 1950년대 크게 전성기를 누리다가 60년대 말에 점차 사라져갔지만 최근 네이버 웹툰 ‘정년이’의 인기에 힘입어 그 존재를 다시 드러내었다. 「삼질이의 히어로」는 그때 당시 최고 스타 중 한 명이고, 이 작품을 연기한 황지영, 박수빈 두 배우의 스승이신 조영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의 공연은 비록 끝났지만 여성 국극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져서 앞으로 국극을 계속 만들 계획이라고 관계자가 말해주어 반가웠다.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보고 감동과 여운을 즐기면 좋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K-오페라이자 뮤지컬인 여성 국극에 대해 종종 소식을 전해드릴 예정이니 앞으로도 소다공장 잘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