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지금처럼, 더웠던 여름, 어느 토요일 아침 7시.
결혼하고 처음으로 배우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이른 아침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주부의 우선순위와 아이들의 돌봄에 대해 운운하는 동거인과 다투고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억울했던 마음이었는지 분노였는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읊조리며 계속 걸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 채였습니다.
손에는 핸드폰과 카드 한 장,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 몇 장.
동거인을 제외하면 가족이 없던 터라 생각나는 건 친구였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연락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작정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군산역으로 갔습니다. 왜 하필 군산역이었느냐 하신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한번 가봤던 군산역이 떠올랐습니다.
대합실로 들어가 역에 붙어 있는 행선지를 하나하나 뜯어보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딜 가면 좋을지.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대합실에 1시간쯤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막막한 마음에 차오르던 눈물을 화장실에서 씻어내고 있던 그때 군산에 이사 와 처음으로 가까워졌던 사람, E가 생각났습니다.
아니, E의 어머님이 생각났습니다.
E의 자유로운 영혼, 그녀가 한창 놀던 20대 시절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딸. E의 어머니는 잠은 꼭 집에서 자야 한다며 E와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녀들이 굶을까 걱정스러웠던 어머니는 늘 밥과 반찬, 국을 차려 놓으셨고, 냉장고엔 먹거리로 잔뜩 쟁여놓곤 하셨습니다. 근 한 달을 그렇게 그녀들을 먹이고 재우고 키워(?) 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 그곳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E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E, E의 어머니 집에 가면 잘 수 있을까? (훌쩍)”했더니 3초 정도의 정적 후 아무 물음 없이, “주소는 문자로 보낼게”
기차 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생전 안면도 없는 이의 집에 간다는 불안감 보다 갈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나 봅니다. 경기도 어디쯤, E가 보내준 주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E의 어머니가 계신 동네에 도착하여 내릴 때, 비로소 밀려온 뻘쭘함, 20대 철부지도 아니고 더욱이 E가 동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 번도 뵌 적 없는 E의 어머님을 뵐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때, 도착한 문자 ‘엄마한테 얘기했으니 딴생각 말고 어서 가라.’
근처에서 E의 어머님께 드릴 빵을 샀습니다. 가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나이가 지긋하신 어머님이 나오셨습니다. “어서 와라,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어서 들어와” 들어가자, 방문을 하나 여시더니 “딸이 쓰던 방이야, 여기서 지내면 돼.”하셨습니다. 침대 위엔 입을 옷과 새 속옷까지 잘 개어져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어머님은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밥도 못 먹었지.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 만들었다 어서 먹어.” 하였습니다.
오후 3시, 물 하나 사 먹을 경황없이 눈물을 훔치며 온 길이어서 밥상을 보는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된장찌개, 오이 볶음, 도톰한 떡갈비, 김치 그리고 이제 막 갓 지은 하얀 밥이 동그란 철재 상위에 놓여 있습니다. 어머님은 다시 한번 제게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집에 있는 걸로 만들었어. 어서 먹어.”라며 제 손에 숟가락을 쥐여 주셨습니다. 밥을 한술 퍼서 입에 넣는데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울컥 목이 메었습니다. 어머니는 물을 주시고 밥 위에 떡갈비도 한 점을 떼어 올려주십니다.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특히 된장찌개는 흐르던 눈물이 멈출 정도의 맛, 생전 그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는 처음이었습니다. 감자, 호박, 양파는 아주 잘게 썰고 파와 다진 마늘, 고추를 넣어 자작하게 끓인 찌개였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와 살았을 때를 제외하면 나를 위한 밥상은 오랜만이었습니다.
그곳에서의 3일, 어머님은 매일 하루 세 끼를 매번 다른 반찬, 그리고 갓 지은 밥을 주셨습니다.
한 끼 한 끼 밥을 먹는 일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일이기보다 내 마음 언저리에 있던 차가운 그늘을 걷어내 주는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그때의 그 따뜻함, 고마움. 그 시간을 기억해 봅니다.
그리고 이후, 나에게 누군가와 밥을 먹는 일은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가능한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밥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아... (웃음) 물론, E의 어머님처럼 만들어 대접하지는 못합니다.
대신 맛집 음식을 나누는 정도입니다💛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었던 밥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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