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던 감정은 H의 얼굴을 보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왔고, H와 팔짱을 끼고 온기를 느끼며 말을 고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도란도란 대화를 하던 시간들.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웃고 놀리고 걱정하던 시간들에서 마주한 얼굴들 속에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큰일이지요.
또한 ‘얼굴’은 지금 시대에, 최근 사건들 속에서 중요한 단어입니다.
비대면 시대를 지나오면서 사회성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그리움을 담는 단어이기도 하고,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 사건이 논란되고 있는 현재에는 여성을 억압하는 단어이죠.
어딘가에 올라간 ‘셀피’(셀프카메라)부터 자신도 모르는 새 불법 촬영되어 ‘불법 도용’되는 여성들의 얼굴들.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성범죄의 유형과 방식을 보면, 정말 어디까지 가능한 건지-결국 어디까지 여성의 일상을 억압하고 행동에 규약과 한계를 만들고 싶은 건지 분노와 의문이 듭니다.
술자리를 늦게까지 가지고 돌아가는 친구의 귀가를 걱정하는 것,
너무 훤히 트인 공공 화장실에 가면 불안해져 불을 끄고 볼일을 보게 되는 것,
숙박업소에 혼자 자게 되면 걸쇠를 하나 더 걸게 되는 것,
페미니즘에 대한 공식적인 발언을 한 친구가 ‘남초’에 ‘좌표’가 찍히는 것을 걱정하는 것,
이성애를 하는 친구의 남자친구가 얼마나 ‘상식’적이고 ‘비폭력’적인지 가늠해 보는 것,
집 주소나 나의 동선이 공개될까 걱정하는 것,
자동차에 공개해두는 전화번호가 악용되지 않을까 안심번호를 찾아보는 것,
음식 배달을 받을 때 배달원에게 얼굴 공개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것,
SNS를 공개로 하지 말고 카카오톡에 얼굴을 올리지 말라고 조언하고 조언 받는 것.
최근 큰 프로젝트를 함께 한 남성 대표님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너무나 무더웠던 여름을 지나는 그는, 너무 더운 밤에는 문을 열고 잔다고 했습니다.
여성이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친구들의 환히 웃는 얼굴을 아무 걱정 없이 보고 싶어지는, 여성들이 늦게 들어가고 싶으면 늦게 들어가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모두 하는 걸 함께 하고 싶어지는 날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