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장은 문학을 사랑하는 대변서가 되어주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태도를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공통점은 읽고 나면 같은 한글인데 어쩜 이렇게 쓸 수 있는지 경탄을 금치 못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14자의 기본자음과 10자의 기본모음을 섞고 풀어가며 차원이 다른 ‘글의 맛’을 선사한다. 마치, 같은 재료인 토마토로 누군가는 멋들어진 토마토 스프를 만들어낼 때 나는 해봐야 설탕을 뿌린 토마토 절임 정도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한강 작가님의 수상을 축하하며, 한글 문학 봄날에 대한 기대와 함께 ‘글의 맛’이 아름다운 몇 가지 문장을 공유한다.
"시인이 시치미 떼고 전하는 어수룩한 말들이 나를 멍하게 하기도 했고,“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제임스 테이트, 최정례 옮김(창비)
역자 서문 中
‘시치미 뗀다’라는 일상의 언어가 이토록 서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시에 대한 문장이다. ‘시치미’도, ‘떼다’도, ‘어수룩한’이란 말도 그 어느 하나가 시와 연결될 거라 생각되진 않지만, 모두를 섞어 하나로 내놓는 최정례의 문장은 ‘시’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설명해 낸다. 그리고 이런 감상은 최정례 시인의 시에서 받는 인상과 비슷하다. 그는 언제나 일상의 풍경을 일상의 언어로 포착해 ”시치미를 떼고“ 툭-하고 시로 내놓는데 멍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치졸하거나 너무 현실적인 단어들 사이에서 어떤 정서를 만들어내는 그의 시다운 감상이라 아름다운 것으로 구성되어있어 부담스러운 문학들이 지겨울 땐 그의 말을 곱씹으며 그의 시를 꺼내 읽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직 말하지 않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발설하였으므로,
내가 끝내 영원으로 돌아간다 한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으리라.”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배영옥(문학동네)
시인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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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
『샤워젤과 소다수』, 고선경(문학동네)
위 두 개의 시인의 말은 작품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문장이다. 가끔 시집을 고를 때, 내용보다는 시인의 말만 펼쳐 읽은 후 마음에 들면 사기도 하는데 두 작품이 시인의 말만 보고 산 대표 시집이다. 담긴 시들도 시인의 말을 멋있게 뒷받침한다. 하나는 외로울 때 다른 하나는 사랑에 빠진 순간에 읽는 것이 좋다. 무엇이 하나이고 무엇이 다른 하나인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익숙한 단어로 낯선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게 시인이라면, 소설가는 문장으로 묵직한 무게를 만들어낸다. 좋아하는 수많은 작가의 말 중, 몇 개를 골라보았다.
“다시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길게 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소설로 충분하다.”
『화이트 호스』, 강화길(문학동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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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책이라는 몸을 입을 때 나는 늘 이별하는 기분을 느낀다. 『밝은 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사히 도착하기를, 자신만의 생명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내 역할은 작가의 말을 쓰는 지금 여기까지인 것 같다.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다.
『밝은 밤』, 최은영(문학동네)
작가의 말 中
작품도 강렬하고 멋진데 작가의 말이 주는 무게까지 더해져 영원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문장이었다. “내게는 소설로 충분하다.”는 말이나,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다.”라는 말은 작품에 대한 견고한 믿음과 단단함이 느껴져 경이롭다.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창비)
작가의 말 中
세상을 변화시키는 투쟁과 혁명의 모든 기반에는 사랑이 있다. 공감하고 지치지 않고 지속해 나가며 연민하고 지켜보는 모든 행동에 담긴 사랑의 힘을 믿는다. ‘사랑’이 SNS 속 보여지기에 그치는 철없는 재미나 한없이 가벼운 장난처럼 여겨지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친구간의 어떤 대상에 대한 혹은 가치나 철학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바꾼다.
수상과 노력 그리고 영광은 한강 작가의 것이지만,
‘지극한 사랑’에 대한 힘은 지쳐가는 뉴스 속 여성들에게 희망으로 빛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