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라는 재료를 가지고 업을 이어온 지 햇수로 6년이 되었다. 의류학이 전공인 나는 훗날 옷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빼다지’라는 이름을 써야지 마음먹었었는데 정확히 25년 후에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서랍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빼다지’는 이십 대 때에도 촌스러운 내게는 그렇게도 예쁘게 와닿았다.(나는 촌스러운 것들을 사랑하고 가장 자연스럽게 촌스러운 것이 진정한 세련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옷을 넣어 두는 공간에서 이젠, 빼다지에 숨겨놓은 보물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만들게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서랍이 되었다.
색색의 판유리를 자르고 다듬고 높은 열에 납을 녹이는 작업까지 많은 공정과 시간이 소요되는 유리 작업은 공간 제약을 적지 않게 받는다.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체험을 위해 공방을 찾지만 매번 새롭다, 사람들이.
그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생각해 보니 다섯 살 고객님이 가장 어렸고, 직접 찾아가 수업을 한 노인정의 구순을 훌쩍 넘으신 어르신까지 많은 분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체험할 때 가장 표정이 살아 있다. 수줍은 미소가 아름다운 아이, 표정이 없는 아이, 목소리가 너무 작아 내 귀를 가까이 대어야 하는 아이, 여기저기 이동하며 궁금한 게 많은 아이....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 모여도 단 하나, 같은 모습이 있다.
그것은 나의 질문에 대한 답에서 볼 수 있다.
“와우, 수연아 정말 잘하는구나. 어떻게 이런 모양을 생각했어?”
나의 칭찬에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다른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저는요?”
(이 표정은 봐야 알 수 있다. 뻔뻔함이 묻어 있지만 해맑고, 잘난 척 같지만 자신감이다. 큭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더 웃음 나는 순간은 이럴 때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손을 번쩍 들며) 선생님! 저 잘했죠”
눈치가 백단? 인 나는 1초도 안 되어 말한다. “끝내준다!”
자신이 대견스러운 표정으로 유리 하나하나를 붙이며 옆 친구가 잘한 것도 좋고, 본인이 잘한 것도 좋은 아이들의 다정한 숨소리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느껴진다. 그 순간만은 평화롭다. 이 아이들의 친구이고 싶다. 아이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