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을 실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려서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덧 60을 넘기는 나이가 되더니 2025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이 다 가고 있다.
이 글이 나갈 때는 2월인데...
2025년 1월 29일 설날이다. 매년 맞이하는 설날이 올해는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2002년 1월 29일!! 그날은 눈은 많이 오지 않았지만, 추위가 매서웠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 경기도 평택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군산여성의전화 활동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여기 개복동에 있는 유흥주점에서 화재가 나서 여성들이 많이 사망했어요. 얼른 오셔요” 나는 너무 놀라 “지금 출발할 테니 선생님들이 빨리 현장에서 가서 상황을 알아봐 주세요”하고 바로 자가용이 있는 분을 독촉해서 군산으로 출발했다.
그때의 떨림과 당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 도착한 현장은 너무도 참혹했고 업소에서 영업하고 생활했던 여성들 11명은 사망하고 3명이 중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있었다. 2000년 발생한 군산 대명동 일명 ‘쉬파리 골목’ 화재 참사를 겪은 지 1년 6개월 만에 발생한 대형화재 참사는 분노 그 자체였다. 군산시는 너무도 엄청난 참사에 ‘사고대책본부’를 꾸려 화재 참사를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문제는 화재 참사의 책임을 업소에서 일하던 여성에게 돌리는 발표를 하여 사건을 왜곡했다. 업소 현장의 구조나 현장에서 발견된 여성들의 일기장에는 감금과 착취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한 외침이 있었다
‘나는 오늘도 화가 난다. 사는 보람이 없어 하루라도 빨리 이런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늘도 **언니, 사장님한테 욕 많이 먹고... “,
’비둘기야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언젠가 네가 나한테 이야기했었지, 나갈 수 있냐고...”
군산대명동화재참사 이후 당시 나는 전북여성단체연합에서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고, 군산개복동화재참사발생으로 대책위를 꾸려 집행위원장을 맡아 사건의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였다. 대책위 활동을 통해 결국 인권침해, 여성들은 선불금과 같은 빚이 있는 상태에서 성매매/성착취를 강요당하다 화재에 탈출하지 못하고 모두 사망하게 되었음을 밝혀내게 되었다. 2월 8일 개복동 현장에서 ’여성장‘을 치르면서 ’성매매/성착취없는 성평등한 세상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부활‘하기를 기원했다. 승화원에서 종일 화장을 하는데 눈이 펄펄 날려 고단하고 험난했을 여성들의 인생의 여정에 동행했다.
2002년 설날은 2월 12일이여서 설날 전에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데려가고자 유족들의 요청이 새삼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군산 대명동, 개복동 화재 참사로 희생된 여성들의 죽음 위에서 2004년<성매매 관련된 법>을 제정하고 작년에 20년을 맞이하여 또다시 개복동에서 우리는 ’민들레순례단‘ 활동을 같이 진행하였다.
군산개복동화재참사이후 군산지역을 넘어서서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 지구적 성착취 문제에 대응하고, 성매매/성착취피해여성에 대한 보호와 지원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다가 단체 대표 임기를 마치고 2022년 나는 다시 군산지역주민으로 돌아왔다. 96년 이후 군산에서 살면서 군산여성의전화를 만들고 지역 여성들의 인권과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함께 하다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지역에서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과 벗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산 대명동·개복동화재참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역단체들은 개복동에 인권 공간을 만들기를 요청했지만 지금까지도 건물이 사라진 자리는 방치되어 있다. 개복동 건물철거때만 해도 이 자리에 여성인권센터와 같은 건물을 짓기로 군산시와 협의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기약도 없어졌다. 개복동화재참사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 설치하려고 ’기억 나비자리, 2002‘라는 조형물까지 만들었지만 설치하지 못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 군산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하지 못한 숙제로 성매매/성착취여성인권의 역사의 장을 되살리는 활동에 대한 채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역에서 여성인권활동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녹녹치 않다. 지역은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소멸을 이야기하면서 청년창업과 청년일자리와 고용창출로 여러 시도를 하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젠더기반여성에대한 폭력은 지역의 보수성과 폐쇄성에 디지털 기술발달로 그 양상도 다양해 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은 개발중심으로 환경문제와 인권은 뒷전인 것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기도 하다.
그 큰 아픔을 겪은지 20년이 지났어도 대명동 쉬파리 골목은 여전히 방치된 상태로 슬럼화되어 있고 개복동 또한 상인들과 여러 행사를 하고 있지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주는 지역공간으로 변하지 않고 있음을 볼 때 마음이 좋지 않다.
한국의 성매매방지법을 연구하거나 전 지구적 성착취에 대항하는 국제인권단체나 개인들도 많아서 군산 대명동과 개복동 화재 참사는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하면서 군산개복동에 와 보기도 하고, 매년 9월에는 전국과 전 세계에서 ’민순례 순례단‘으로 모여서 함께 방문하고 기억하고 잊지 않고 행동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9월에 진행하는 민들레순례단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와 군산여성의전화는 증인이자 증언자로 지역에서 여성인권의 문제, 여성착취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지역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오늘도 잊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