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어떤 색깔일까, 평면보다는 입체감이 느껴지는 재료일까, 액자를 벗어나서 공간에 설치하는 작품이 될까,라며 남다른 굴곡진 삶에 자부심(!) 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스스로 위로를 하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예스!’ 그렇기도 하다.
인생이 정답은 없지만 나만의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앞에 놓인 무한한 캔버스에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어떻게 그려질지, 정격과 어떤 파격이 예상외의 즐거움을 줄지 기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고 부정적인 예언도 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일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고 ‘생각만큼 큰일이 아니구나’ 바로 알게 된다.
바로 볼 수 있으니 일상과 사건은 제자리를 찾게 된다.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먼저 길을 나서 본 사람으로서 내 뒤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지도 대신 거울을 건네준다. 목적지를 잘 찾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가를 먼저 볼 필요가 있기에. 전투사의 목적지가 사찰이거나 광대의 목적지가 장례식장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를 바로 보는 것이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도착하는 방법이다.
거울을 보면 안다.
내 모습이 어떠한지.
복장이 마음에 든다면 어깨가 펴지고 든든해진다.
단추가 풀렸거나 옷매무새가 틀어졌다면 거울을 보고 스스로 바꾼다.
마음을 거울에 비추어보면 내 마음이지만 나도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된다.
새삼 멋있다고 감탄을 할 수도 있고, ‘이건 아닌데’ 다시 입을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의 거울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진심으로 나를 맑게 비추어주는 친구나 전문가가 있다면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혼자서 스스로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시험 삼아 한 번 해보시라.
벽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반려동물하고라도 이야기할 때 말이 트인다.
사람이란 다른 생명의 숨결을 느낄 때야 자신을 비출 수 있는 존재인 것 같다.
어떨 때는 물건 하나에 운명을 소환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도 있으니 참 시트콤과 대하드라마가 한 사람 안에 같이 존재하는 재미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를 맑게 비추어주는 친구가 다시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