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상처받고 싶어서 상처를 받은 게 아닌데,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계속해서 보살피면서 나를 키워야 하는 게 억울하지 않아?"
술자리에서 나온 말이었다. 2011년, 스무 살 신입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었다. 함께 성장했고, 서로의 변화를 지켜봤다. 기쁜 일에는 축하를, 슬픈 일에는 위로를 건네고 때론 대신 분노해 주기도 했다. 그날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어린 시절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은 당당하게 살다가도 어떤 날엔 사소한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고, 별일 아닌 일에 움츠러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은 것들이 태도가 되어 불쑥 나타나는 걸 지켜보는 날이 있었다.
술자리에 함께한 언니는 자식을 키우며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아이가 어디서든 "보호자 없이 관리받지 못한 티"가 나지 않도록 옷과 물건을 챙긴다고 했다. 어린 시절, 이모 집에서 학교를 다닐 때 동급생이 "쟤는 엄마 없나 봐."라고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상처는 단순한 기억으로 끝나지 않는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기대와 실망, 충족과 불만. 그런 감정의 시소를 타며 감정 소모를 했고, 그러다 내려놓고 거리 두는 손쉬운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누군가는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누군가는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기며 정돈된 인상을 유지한다. 어떤 사람은 깊은 관계를 피하고, 어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받으려 한다. 누구나 어딘가에서 상처받고, 그것을 드러내지 않지만 위로받고 싶어한다.
상처가 언제나 부정적인 행동을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노력하는 방향 역시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보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상처를 어떻게 다룰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을 계속 움켜쥔 채 살지,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갈지. 가끔 나의 모난부분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은 쉽게 되지 않았고,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려 한다.
한 때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제는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를 이루는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상처받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렇게 자랄 것이다. 타인의 상처를 함께 안을 수 있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