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지막 날 알게 된 내 뱃속의 난소혹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서 60일이라는 시간을 송두리째 가지고 갔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수술은 내 예상을 빗나갔고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산부인과 투어(?)가 시작되었다.
지방에서 하려던 수술은 내 증상에 대한 공감 부족과 환자를 대하는 마음의 시선이 많이 차갑다는 느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복 수술만 가능하다는 단호한 상담이 나를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무서웠지만 마음을 다잡고 주위에 알리기 시작했다.
실력이 있다는 큰 병원들에 전화했지만 외래 진료 예약 잡기도 힘들었다. 빠르게는 한 달 더디게는 서너 달 후에나 수술이 아니라 진료 예약이라니.... 가장 빠르게 잡힌 병원에 찾아갔지만 역시나 수술은 5월이나 가능하다고 한다. 속상한 건 그 사이 17센티였던 혹이 18센티가 되었으며, 혹은 계속 커질 거라는 말.
그렇게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를 부여잡고 서울과 군산을 오가며 생각지 못한 몸 공부를 하게 되었다. 50년 넘게 내 안에 자리한 자궁. 난소의 크기가 어떻게 되며 난소에 나팔관이 붙어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자궁에 무슨 병명이 그리도 많은지. 왜 여성들이 생리통을 앓게 되는지. 적어도 나는 모르고 살았더라.
난소혹이 혹여 물이나 점액질로만 이루어졌다면 비수술인 경화술도 있지만 내 경우엔 알 수 없는 신생물이 있어서 그 방법조차 통하지 않았다. 청담의 모 산부인과에서 있었던 일이다.
병원을 잘 안 가는 성향이다 보니 더 놀란 것도 사실이다. 병원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느낌, 넘치는 서비스와 친절함에 금세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음파 진료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속옷까지 다 벗고 병원에서 제공되는 치마를 입는다) 베드에 눕는다. 상당히 긴장되고 수치심 비슷한 감정이 퐁퐁 올라오기도 한다. 그리고 초음파를 보기 위해 진료 부위에 초음파 젤을 바른다. 생각보다 차가워서 깜짝 놀라는데 이곳은 젤 온도가 내 체온보다 높았다. 젤 온도가 뭐라고..... 그 작은 것에 감동받았다. 여러 병원 중 그곳에서만 볼 수 있었던 따뜻함이었다.
우리는 이런 작은 따뜻함을 쌓아두고 한 번씩 꺼내보며 살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여러 곳을 다니며 수술날짜가 가장 빠른 병원에서 생각보다 이르게 수술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분에게 수술을 받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호소하는 증상들 모두를 알고 계셨고 왜 그런지 설명은 물론 더 궁금한 게 있는지 물어봐 주는 시간도 내어주셨다.
수술 후 군산에 내려와 한방병원에서 회복했다. 수술하면서 투입한 가스 때문에 가스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뱃속에서 띄어져 있는 장기들이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려서 숨쉬기가 고통스러웠다. 운동을 해야 회복이 빠르다는 말에 시간이 나는대로 좁은 병원 복도를 미친 듯이 걸었다.
수술을 생각하면 세상이 끝인 것 같은데, ‘내 시선’을 그렇게 멀리 있게 두지 말고 바로 지금 앞으로 가져온다.
지금 내가 할 일은? 피검사. 오케이 그것만 하자!
그렇게 60일을 보냈다.
아직 뛰지도 산을 오를 수도 없지만 지나온 60일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걷기를 하다 보면 뛰고 있을테다. 마치 처음부터 뛰었던 것처럼.
이렇게 저는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