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품은 현재 두 개의 디자인으로 출시돼 있습니다. 다른 분야와 달리 디자인이 두 개인 책은 매우 드물어요. 인기의 증표라고 할 수 있죠.
원산지는 체코입니다. 2016년 7월에 국내 최대의 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초록색 표지로 출시했습니다. 한국인에게 체코 문학은 생소합니다. 그런데도 그해 말 국내 소설가 50인이 올해의 소설 1위로 선정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주목을 받았어요. 마리서사에서도 오픈할 때 꼭 갖춰야 할 500권, 1차로 주문해야 할 300권에 포함한 이래, 지금까지 항상 3권 이상 구비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처럼 양장제본에 가름끈이 달려있어요. 양장제본은 표지의 심지를 딱딱한 소재로 만들어 튼튼합니다. 표지를 넘길 때 특유의 묵직함은 종이책을 읽는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책을 읽다가 중단할 때 가름끈을 당겨 읽던 페이지 사이에 가지런히 놓아보세요. 어디까지 읽었는지 가름끈이 알려줍니다. 이만큼 읽었다며 가름끈이 다독입니다. 책 디자이너들은 표지가 결정되면 가름끈 색상을 고민합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가름끈에도 표지와 조화하며 제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오렌지색 표지는 2024년 9월에 출시되었습니다. 역시 양장제본인데요. 오렌지색 표지에 밝은 노란색 체코어 원서 제목(Přílíš hlučná samota)을 크게 넣어 상큼함을 더했습니다. 놀랍게도 가격이 2016년과 12,000원입니다. 종이 가격을 비롯한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양장제본 제품이 이 가격인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조만간 가격 인상이 예상되므로 서둘러 구매할 것을 권합니다.
출판가에서 신상 출시 9년 만에 리커버 제품이 출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어떤 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붙잡은 걸까요?
좋은 제품은 독자를 계속 책에 머물게 합니다. 이 제품이 그렇습니다. 개봉하면 읽기를 멈추기 어려워요. 다행히 판형이 크지 않고 144쪽에서 끝납니다. 어스름한 저녁에 읽기 시작해도 새벽녘에 마지막 쪽에 닿을 수 있어요.
144쪽을 이끌어가는 이는 프라하의 폐지 압축공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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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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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한탸. 그는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가 반드시 신사이거나 살인자일 필요는 없다는 헤겔의 생각에 동의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는 폐지로 들어온 책더미에서 자신이 읽을 책을 찾아냅니다. 하루 종일 지하실에서 일하다가 퇴근 후엔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그의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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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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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삼십오 년간 폐지를 압축하다가 헤겔, 칸트, 예수, 노자의 문장을 사탕처럼 빨아먹고 현자가 된 한탸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그가 마지막으로 압축기에 넣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낮에는 지하실에서 하수구 냄새를 맡으며 책을 파쇄하고 밤에는 칸트를 읽는 폐지 압축공을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