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도로 위, 화물차 운행시간이 10시간이 넘어가니 어김없이 졸음이 찾아옵니다. 졸지 않으려고 껌도 씹어보고 노래도 불러봐도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졸음쉼터에 잠시 들려서 잠을 자고 가야 하나... 생각을 할 찰나, 졸음이 달아나는 풍경에 웃음이 나옵니다.
“여보 앞에 화물차 표정 좀 봐 ㅋㅋㅋㅋ”
사진1. 상미가 그린 왕눈이 스티커
두꺼운 짱구 눈썹. 마치 만화 캐릭터 쿵야와 비슷한 생김새로 저를 감시하듯 쳐다보는 화물차의 뒷모습에 웃음이 나와요.
이것의 존재는 바로 화물차 왕눈이 스티커입니다. 화물차가 아닌 다른 차종에서도 붙일 수 있지만 대략 화물차에 많이 붙어있는 녀석입니다.
어느 순간 고속도로에서 많이 보이는 왕눈이 스티커는 귀여운 표정을 봐서는 마치 화물차 기사님의 개성을 드러내는 단순한 스티커 같지만 사실은 안전운전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라는 심리적 압박감을 줘 스스로 정직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한국도로공사가 2020년 3월부터 보급했다고 해요.
보급 당시 화물차 기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휴게소에서 화물차를 대상으로 무료 배포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왕눈이 스티커는 귀여움 말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간에는 후방차량 운전자의 시선을 유도하고, 야간에는 전조등 빛을 약 200m 후방까지 반사해 전방 주시 태만으로 인한 화물차 후면부 추돌사고와 졸음운전을 예방한다고해요.
처음에는 동~그란 눈에 단순한 디자인이었지만 시행된 이후 많은 디자인이 생겨 요즘은 취향껏 원하는 디자인을 붙이고 있어 고속도로 위에서 화물차 후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진2. 그동안 주섬주섬 모아온 사진들입니다. 화물차 기사님들의 성격을 알 것 같은 표정들이에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눈이 있는데 남편과 저는 “유혹하는 독수리”라고 부릅니다.
때는 약 2년 전, 그날따라 일이 늦게 끝나 밤늦게 경기도에서 전라도로 내려오는 길이었고 피곤과 졸음이 쌓여 옆자리에 탄 저는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졸지 말아야지.. 눈을 힘겹게 뜨니. 앞에는 활어 운송 차량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에는 멋진 독수리 눈 스티커를 붙여두었죠.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한겁니다..
자세히 그림을 봐주세요.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사진3 상미, 웃느라 사진을 찍어놓지 못해 비슷한 디자인으로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아직 무엇이 웃음 포인트인지 모르시겠죠?
잠결에 앞차를 본 저는 음... 독수리 스티커네..
근데 왜 저렇게 피곤한 보이지...?
음..... 하다 문득 발견한 사실 하나.
원래는 굉장히 멋지고 카리스마 있는 독수리 눈 스티커인데 화물차 기사님이 의도한 건지 장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아래위를 거꾸로 붙이셨지 뭐예요. 그래서 그만 멋지고 용맹한 독수리의 모습에서 따라오는 뒤차를 누워서 유혹하는 독수리가 되어버리고 만 거죠.
사진4. 상미가 그린 "유혹하는 독수리"
옆에서 운전을 하며 갑자기 웃는 저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남편마저 곧 웃음이 터졌고 눈물 나게 웃고 나니 졸음은 어느새 달아나 있었습니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졸리고 피곤한 시간 무기력하게 가던 저희는 독수리에게 유혹당하고 눈물이 나올 때까지 웃었습니다.
이게 바로 이 스티커의 효과일까요?
그 뒤로 다시 한번 더 이 차량을 만나길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저희 부부 사이에서는 이 사건을 유혹하는 독수리라 명명 지으며 두고두고 웃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종종 화물차 뒷부분이 아닌 앞에 LED 전광판으로 눈을 깜박이는 전광판 왕눈이도 등장했습니다. 불법 사항이라서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건너편 차선에서 바라봤을 때는 눈을 깜박이는 역동적인 움직임 덕에 잠을 깨우는 효과는 있어 보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