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무렵, 서점가에 <오래된 미래> 공식 한국어판이 나타났습니다. 서점 매대에서 그 책을 보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양장제본에 랩핑이 된 <오래된 미래>, 표지 하단 중앙의 선명한 중앙북스 출판사 고로
여러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저작권 계약을 하지 않았다더라’
‘저자에게 인세를 주지 않았다더라’
얼마 후 경향신문 지면(2007년 12월 3일자. ‘오래된 미래’ 쓸쓸한 개정판)에서 확인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김종철 교수와 호지는 오랜 친구 사이이며, 김종철 교수는 친구에게 허락을 받고 책을 출판했다. 그리고 부정기적으로 저작권료를 보냈다. 그러던 중 호지가 강연을 위해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고, 새로운 출판사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어떤 이유 혹은 어떤 (인세) 조건으로 중앙북스가 선정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래된 미래>의 공식 한국어판이 새로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녹색평론사의 <오래된 미래>는 비공식 한국어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90년대에는 출판가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습니다. 지금은 해외 출판물을 국내에 소개하려면 정식 계약을 맺는 것이 당연한 절차가 되었지만, 정식 출판을 거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번역하여 공동체에서 함께 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오래된 미래>를 읽고 인도 여행길에 라다크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라다크가 제주도 같은 느낌이지만, 그곳은 방문하고 싶다고 마음먹어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히말라야와 티벳고원 사이에 위치한 라다크는 높은 산 위의 사막과도 같습니다. 당시 제 여행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마날리(manali)'란 마을에서 라다크의 중심도시인 '레(leh)'로 통하는 육로가 열리길 기다린다. 6월 초부터 마날리와 레를 잇는 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레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동이 시작된다(보통 6월 말이나 7월 초순이 되어야 길이 열리는 게 정상인데, 작년 겨울 인도에 눈이 적게 와 올해는 일찍 열렸다).
6월 8일, 나도 그 행렬에 끼여 마날리의 푸르름을 뒤로 하고 레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탄 지 2시간 즈음 지나자 해발 3400미터의 로탕패스(lotang pass)'가 나타나고 이곳을 기점으로 초록빛의 세상은 끝이 났다.
라다크에 도착해서 눈에 들어 온 것은 낮게 나는 새이다. 이곳은 나무가 자라지 않아 새들도 땅 주변에서 먹이를 구한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이 라다크에 가득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흔적입니다. 호지는 1970년대 중반, 현지 언어를 습득하고 자신의 학위 논문을 위해 인도 북부 라다크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호지는 서구 문명의 유입 과정에서 라다크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현대 산업사회를 비판하는 강연 및 여러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호지는 이를 계기로 환경운동가, 반세계화 활동가,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래된 미래>를 발표하면서 라다크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호지는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한국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녀 역시 녹색평론사의 <오래된 미래>를 기억하고 그리워할까요? 저는 이런 궁금증을 품고 <오래된 미래> 비공식 한국어판을 그리워하며, 공식 한국어판을 판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