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어.”
명대사가 많기로 유명한 영화 타짜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무상함에 대해 말한 대사 같은데 누군가 알고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물업계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이 바닥에서는 영원한 내 짐은 없어.”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고 덤벙 시작한 화물운송일. 지난 3년간 흔히 말하는 똥짐과 꿀짐의 구분도 잘못한 채 해왔습니다. 운이 좋아서 지난 2년간은 경기도권으로 올라가는 짐과 전라도로 내려오는 짐을 나름 두 업체에서 꾸준히 나오는 일로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겨울 이후 화물업계도 사정이 아주 안 좋아졌습니다. 소비가 줄었고 회사는 가동을 멈췄고 수출도 줄어서 달에 20번 정도 나오던 고정 일은 반절의 반절도 안 되는 수준인 한 달에 3~4번 나오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저희에게 일을 배차해 주시는 분이 이 일은 이제 끝난 것 같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일의 사망선고와 같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약 2년 동안 활발히 해온 일이어서 이렇게 끝날 거라 곤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죠. 정말 하루아침에 끝난거라 현장에서 일하시던 분들과 미쳐 ‘안녕’ 인사도 나누지 못했어요.
삶은 내가 계획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새로운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동안 해오던 노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 활로를 찾기로 결정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새로운 환경으로 나를 갖다 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아서요.
하지만 무서웠습니다. 올라가는 일에 대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오랫동안 해와서 상하차 대기시간이나 하루의 일정이 예측할 수 있었기도 하고 꽤 애정을 갖고 있었거든요. (저녁에 먹은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꿀맛 같은 야식과 늘 다정한 말로 챙겨주시는 화물기사님들이 좋았어요) 그리고 매일 안정적으로 나오던 일이었기에 안락한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꽤 두려웠습니다.
하루 매출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더 이상 미련을 갖고 주저 앉아있을 순 없습니다. (매달 내는 화물차 할부는 어마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대리님이 받는 정도의 월급을 매달 납부해야해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것은 안 비밀.)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 지 보름 정도 되었습니다. 이 일 저 일. 매일 새로운 일을 잡으면서 우리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한 일이 있는데, 생각보다 우리의 루틴에 잘 맞고 여기저기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일이라 기대하며 아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의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동안 미처 몰랐던 새로운 문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문을 닫은 줄 알았는데 아마도 새로운 문을 연 것 같습니다.
권여름 작가의 <작은 빛을 따라서>에서 나오는 아파트 앞 작은 상가의 필성슈퍼는 근처 새로 새긴 엉터리마트를 대항하는 방법으로 ‘두부 한 모라도 배달’을 시작합니다. 제목에서처럼 멀리 보이는 저 작은 빛을 따라서 필성슈퍼의 가족처럼 열심히 살다 보면 ‘간당간당’하게라도 빛을 향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고 무엇이든 해보는 것. 이것이 지금 제가 선택한 삶의 방향입니다. 이 방향이 영 잘못된 곳으로 갈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곳으로 저를 안내할 수도 있겠지요. 일단 저는 가볼랍니다. (뭘 먹을지는 모르겟지만 일단 고)
이 바닥에는 영원한 내 짐도 없지만. 짐도 없지만은 않을 것이며,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니까요. 삶이 뭔가 답답할 때 위기에 봉착한 것 같을 때, 이제는 다 끝나버린 것 같을 때가 오히려 럭키비키 잖앙, 오히려 좋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