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시각장애인 친구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하는데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우리중 가장 출석률이 높은 친구이다. 어느날 그가 모임 참석을 위해 걷던 중 공사현장이 고르지 못하여 구덩이에 빠져서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본인 몸 상했을까 걱정하는 우리에게 다친건 괜찮은데 모임에 못 와서 아쉽다고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여러갈래로 안타까웠다.
나는 그 친구에게 가끔 길을 걸을 때 팔을 내어주거나 지금 앞에 무엇 혹은 누가 있다고 미리 알려주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나보다, 멀리 있는 다른 친구가 먼저 알아채고 달려와서 그에게 도움을 줄 때는 좀 미안하기도 하다.
예전보다는 눈치를 좀 챙기는 편이라 요즘은 그 친구 가까이 있으면서 먼저 도울 것이 있는지 묻기도 한다.
또한 좋은 책을 읽고 그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어 e북으로 들어갔지만 선물하기가 안되는 전자책이어서 몹시 아쉬웠다. IT강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싶어 의아해진다.
나에게는 또 휠체어 탄 친구가 있다.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을 오를 때면 신기하게 생긴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하여 오르고 이동거리가 멀면 휠체어 앞에 바이크를 달고 씽씽 달리기도 한다. 조그만 기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친구가 새로운 장비를 장만할 때마다 호기심이 동한다.
가끔 만나 술도 마시고 밥도 먹는데 보통 가까운 거리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눈이나 비가 올 때면 장애인콜택시(일명 장콜)를 타고 나타난다. 물론 장콜을 부른다고 해서 택시가 바로 오지는 않는다. 이용자가 많아 대기가 길어지면 약속시간을 맞추기 힘들 뿐만 아니라 가는 길도 걱정이다.
눈은 쌓이고 대기시간은 한 시간이 넘어가고 식당 주인은 퇴근기미가 역력한데 오지 않는 장콜에 모두가 안절부절해 한다.
나는 출·퇴근등 특정시간외에는 택시를 이용할 때 별로 어려운 점이 없었다. 그런데 장콜 이용횟수 제한이나 배차지연에 대해 알고 나니까 장애인이라고 해서 이동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친구들을 알면서부터 장애의 취약함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장애인 경사로, 출입문, 점자블록, 점자도서관 등은 이제 좀 익숙해진 것 같다.
요즘은 영화관에도 휠체어석 지정이 의무화 되고 연극 공연할 때에도 자막은 물론이고 극 시작전에 소리나 빛의 최대치를 미리 보여주고 들려주어 관람중에 불안하거나 놀라지 않게 한다.
뿐만 아니라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연극배우와 휠체어탄 무용수의 무대도 점차 늘어간다.
이른바 ‘배리어프리’라고 해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물리적, 제도적, 심리적 장벽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운동 및 시책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장애인에게 안전한 도시가 비장애인에게도 안전하다.
대도시에서 흔한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이동권을 주장하는 휠체어 타는 장애인들의 숱한 희생 끝에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휠체어 타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쓴다.
노인, 임산부, 유아차 사용자, 짐이 무거운 사람, 다리가 불편하거나, 피곤한 사람들과 그 동반자들.
나도 지하철에서 자주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그때마다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애써준 장애인들의 희생과 노고에 늘 감사하다.
이런 경험으로 돌아보니 화장실도 그렇다.
사시사철 이런 저런 지역축제들이 많이 열리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축제에 단체로 참여하던 중 이동식 화장실 계단이 높아 불편하다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계단이 높으면 아이뿐 아니라 다리가 아프거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어려울 터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인권과 관련된 일 아닌가. 먹는 것 만큼이나 배설은 인간의 존엄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장애인은 축제장을 찾지 말라거나 알아서 극복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 시대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어떻게 방법을 찾고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알아보니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장애인용 이동식 화장실이 있었다.
말이 난 김에 화장실 관련하여 이리저리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화장실이 성인중심적, 남녀이분법적이며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설계되었기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모두의 화장실’ 또는 ‘다목적 화장실’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지금처럼 남녀로만 나뉘어진 화장실은 트렌스젠더와 시스젠더 모두에게 안전하지 않다.
딸을 동반한 아빠, 아들을 동반한 엄마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휠체어 이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장루·요루 보유자도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는 화장실이 필요하다.
장루·요루란 정상적인 배변·배뇨 기능이 어려워 장의 일부분을 복벽에 고정시켜 몸 밖으로 배설할 수 있도록 만든 주머니이고 자주 비워줘야 하며 그 주머니를 세척할 수 있는 기구가 설치된 화장실이 필요하다.
아동이나 고령, 질병으로 인한 배변 실수를 대비해서, 그리고 여성들 생리컵 사용에 꼭 필요한 세척기능도 필요하다.
보호자와 동반하는 유아를 위한 아동용 변기·세면기가 포함되는 형태의 온전한 ‘다목적 화장실’ 그리고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필요하다.
한국도 몇몇 대학교에 설치되어 있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