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몰이해로 인해 변 하사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 사실을 외면하던 군이 최근에야 변 하사에 대한 강제 전역 조치가 우울증을 유발해 사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잊지 못할 것 같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버릴 수 있다”라고 밝게 웃던 변 하사의 인터뷰를. 변 하사의 그 용기 덕분에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지지자들, 나 같은 부모들까지 감사하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변 하사의 상사들은 변 하사를 지지해 주었고 성전환수술 이후에도 복무할 수 있도록 여러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군의 수뇌부는 변 하사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성 확정 수술을 ‘고의에 의한 신체 훼손’으로 간주하여 강제 전역 조치하였다. 2002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당시 중령)을 강제 전역(2009년) 시킨 관점에서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아프거나 성 확정 수술로 인한 신체의 변화를 ‘훼손’으로 본 것이다. 흔히들 이른바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신체와 ‘다른 상태’는 모두 문제와 결함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에서는 23년 1월 국방부에 재심사를 권고했다.
‘신체장애를 이유로 강제 전역 등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지였다.
국가인권위에 다행이면서도 아쉬운 점은 권고 내용 중 성 확정 수술을 하면 당연히 따르게 되는 신체의 변형에 대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특수성을 고려해서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언급했었으면 하는 점이다. 그랬더라면 군이 장애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쉬움이 크다.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당시 중령) 덕분에 군 인사 규정이 바뀐 것처럼 성 전환자의 군 복무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주길 바란다.
역사는 이처럼 개인적으로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부터 실마리가 시작되는 것 같다. 아무 어려움이 없다면 아무 시작과 아무 발전이 없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그들의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싸움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이나 숨 쉬고 사는 거겠지.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당시 중령)은 땅에서 그 결과를 보았고 변 하사는 하늘에서 이 결과를 보고 있을 것이다.
변 하사는 생전에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방문해서 같이 밥도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변 하사의 장례식장에서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대표인 하늘 님의 절박한 호소가 생각난다.
변 하사의 천주교 세례명은 가브리엘(남성형)인데 같은 천주교 신자이신 하늘 님께서 '변 하사가 그렇게 원했는데 남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가브리엘라(여성형)로 보내줘야 한다고 천주교 관계자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세례명을 바꾸는 것은 교황청에서 허락해야 한다는 천주교 법으로 인해 아쉽게도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 마당에 세례명 변경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하느님 안에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안하기를 바라는 하늘 님의 그 간절함에 같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비슷한 느낌을 나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전북 익산에서 동료였던 고. 강연희 소방경이 순직했을 때 계급을 추서-순직 후 한 계급 올림-했다. 당시 유족과 나는 무엇보다 먼저 영정사진에 한 계급이 더 올라간 계급장으로 포토샵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사진의 계급장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지만 우리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가는 사람에게 그거라도 해주고 보내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인 것이다.
남은 사람에게는 그 마지막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든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변 하사도 하늘에서 조금은 웃고 있을까?
변 하사의 2020년 1월 22일 기자회견문을 언급하고 싶다. 이런 훌륭한 군인을, 그렇게 보낸 군 수뇌부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를 바란다.